악마와의 거래 | playlist
독일 알프스의 깊은 품에 안긴 네벨슈타인 성은 이름 그대로 거대한 안개 더미 속에 잠겨 있었다. 해발 1,500미터의 고립된 석조 성채를 집어삼킨 안개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지워버렸고, 공기 중에는 오랫동안 가물었던 대지에 비가 내릴 때 발생하는 특유의 흙 내음, '페트리코'가 짙게 진동했다. 그것은 고대 바위의 숨결이자, 지엽적인 식물성 기름과 토양 속 박테리아가 내뿜는 게오스민의 금속성 악취였다. 성주가 머무는 사적인 공간인 '솔라'의 육중한 문 안쪽에는 세 남자가 모여 있었다. 벽난로의 불꽃은 타닥거리며 춤을 추었고, 그 빛은 바닥을 장식한 흑백의 체커보드 문양 위로 기괴하게 산란되었다. 흑과 백의 대비는 마치 삶과 죽음, 선과 악의 영원한 투쟁을 상징하는 거대한 기하학적 제단처럼 보였다. "이 고약한 냄새는 마치 죽은 자들이 땅 밑에서 기어 올라오는 것 같군." 영국의 몰락 귀족, 알리스터 스털링 경이 코끝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그는 런던의 도박장에서 가문의 영지를 모두 탕감하고 도망쳐온 '레이크(rake)'였다. 그의 주머니에는 이미 가치가 사라진 약속어음들이 뭉텅이로 들어 있었다. "스털링 경, 예술적으로 표현하자면 이건 신들의 혈액이 바위 틈으로 새어 나오는 향기지요." 프랑스의 화상 에티엔 드 비니가 냉소적으로 대꾸했다. 그는 인간의 영혼조차 재판매 로열티가 발생하는 상품으로 여기는 사내였다. "신은 이 안개 너머에 계시지 않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온 파드레 로렌초가 묵주를 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악마는 이 검은 칸과 흰 칸이 만나는 경계면에, 즉 우리의 욕망이 교차하는 지점에 숨어 계시지요." 그때, 거대한 쇠창살 문인 포트컬리스가 내려가는 굉음이 성 전체를 뒤흔들었다. 아무도 조작하지 않았음에도 성의 유일한 출입구가 폐쇄된 것이다. 동시에 방 한구석, 그림자가 짙게 깔린 안락의자 위에 검은 고양이가 나타났다. 고양이는 인간의 치열을 닮은 기괴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쳐다보았고, 그 옆에는 초록색 수트를 입은 정체불명의 남자가 쓰러진 듯 주저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은 검은 연기에 휩싸인 듯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지만, 손에는 붉은 액체가 든 술병이 들려 있었다. "거래를 하러 왔나?" 연기 속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성의 지하 통로에서 울려 퍼지는 메아리 같았다. 남자는 세 사람에게 각자의 갈망을 제시했다. 스털링에게는 부채를 탕감해 줄 황금을, 에티엔에게는 유실된 르네상스의 걸작을, 로렌초에게는 바티칸 비밀 서고의 열쇠를. "조건은 하나다. 이 성의 '살인 구멍' 아래 숨겨진 상자 속에서 내 이름을 찾아내는 자가 모든 것을 갖는다. 실패하는 자는 이 체커보드 바닥의 검은 칸으로 영원히 가라앉을 것이다." 세 사람은 각자의 목적을 위해 흩어졌다. 스털링은 성벽에 돌출된 중세식 변소인 가더로브를 뒤졌고, 에티엔은 벽 내부의 청취용 통로인 '리스닝 갤러리'를 통해 다른 이들을 감시했다. 로렌초는 예배당의 비밀 계단을 통해 지하 감옥인 우블리에트로 내려갔다. 그러나 조사가 진행될수록 서로의 추악한 진실이 드러났다. 에티엔이 찾던 그림은 사실 스털링 가문에서 훔쳐온 것이었으며, 로렌초는 이미 교황청의 자금을 횡령해 에티엔과 불법 거래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이곳에 모인 것은 우연이 아니라, 서로를 파멸시키기 위해 파놓은 함정이었다. 결정적 단서는 스털링이 오리엘 창가에 떨어진 오래된 일기장에서 발견되었다. 성의 이전 주인은 거래의 대가로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성의 돌덩이가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악마의 이름은... 바로 우리 중 한 명의 이름이야." 스털링이 공포에 질려 소리쳤다. 다시 솔라에 모였을 때, 초록 수트의 남자는 사라지고 거대한 거울만이 놓여 있었다. 거울 속에는 그들 세 명의 얼굴이 기묘하게 뒤섞여 하나의 괴물을 만들고 있었다. "악마는 외부에 있지 않다. 우리의 욕망이 만든 그림자일 뿐이다." 반전은 에티엔의 고백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사채업자의 대리인이었으며, 스털링을 이곳으로 유인해 자살로 위장한 살인을 저지르려 했다. 로렌초는 그 살인을 면죄해 주기로 한 공범이었다. 하지만 정작 스털링은 이미 일주일 전 런던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유령이었다. 이 자리에 있는 스털링은 악마가 빚을 거두기 위해 빌린 껍데기에 불과했다.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에티엔과 로렌초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려 했으나, 바닥의 체커보드 문양이 소용돌이치며 그들을 삼켰다. 다음 날 아침, 마을 사람들은 네벨슈타인 성의 외벽에 새로운 가고일 두 개가 추가된 것을 보았다. 하나는 세련된 프랑스인의 얼굴을, 다른 하나는 공포에 질린 신부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솔라의 안락의자 위에는 여전히 검은 고양이가 앉아 있었고, 바닥에는 주인을 잃은 브랜디 병만이 흑백의 경계선 위에 덩그러니 멈춰 서 있었다. "거래는 끝났다. 하지만 로열티는 영원히 지속되지." 고양이는 한 번 더 인간처럼 비릿하게 웃고는, 자욱한 안개 속으로 유령처럼 사라졌다. 네벨슈타인의 안개는 걷혔을지 모르나,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안개는 유럽의 어느 고성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피어오르고 있었다. - All writing and music in this playlist are 추리플리 origin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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